진정한 스승은 아무것도 가르칠 것이 없다. 진정한 스승은 아무것도 더하거나 줄 것이 없다. 진정한 스승은 새로운 정보나 믿음, 규범 같은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스승은 당신의 본연의 모습을 가리는 것, 존재의 심연에서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진리와 당신 사이에 가로놓인 무언가를 스스로 제거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스승은 내면의 깊은 차원, 평화로움을 드러내 당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밖의 고요함을 의식하는 순간 안의 고요함이 깨어난다. 비로소 당신은 지금 여기 존재하게 된다. 그 순간 당신은 수천년 동안 되풀이해온 인류의 습관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p.14
나무를 보라. 꽃과 풀을 보라. 당신의 맑은 마음을 그위에 살며시 올려놓아라. 나무는 얼마나 고요한다. 꽃은 얼마나 생명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가. 자연에서 고요함을 배우라.
p.15
진정한 지혜는 고요함 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창의력을 개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라.
p.17
고요함이란 다만 소음이 없는 것, 안에 내용물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고요함은 지혜이며 모든 형상이 태어나는 근원적 의식이다. 그럴진대 어떻게 그것이 본연의 나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본연의 나라고 생각하는 나의 형상, 즉 나의 몸이 실은 그로부터 나왔고 그로부터 생명 에너지를 받고 있다.
p.17
인간의 병 : 생각 속에 길을 잃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고 생각이 지어낸 좁은 자아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p. 23
이들과는 달리 권태로운 기분을 바꾸겠다는 생각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맑은 마음이 권태로운 기분에 가 닿으면 한 순간 그 주변이 트이며 고요함이 들어선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틈새 공간이 점점 더 커진다. 그와 동시에 권태로운 느낌이 조금씩 약해지며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권태도 스승이 될 수 있다. 나의 본모습이 무엇이고 나의 본모습이 아닌 것은 무엇인지 가르쳐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p. 29
'모른다'는 것을 마을 편히 받아들여라. 그러면 생각하는 마음을 넘어서 저편으로 갈 수 있다. 마음은 항상 주어진 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모른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 편히 수용할 때 이미 당신은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그때 개념적 사고를 벗어난 깊은 앎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
p. 33
에고는 항상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좀더 보태어 좀더 완전해지기 위해 에고는 이것을 찾아 챙기고 저것을 찾아 소유하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더 많이 쌓아두려 한다. 에고가 강박관념처럼 미래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p. 23
목표를 정하라.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알라.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서 무언가 생긴다면 그것은 바로 이 순간이 목적을 우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어떤 행위든 매순간 그것 자체로 만족스럽다. 나는 더 이상 지금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오직 에고만이 그렇게 한다.
'내가 없으면 문제도 없다.' 불교의 깊은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어느 스님의 답변이다.
p. 45-46
이 한 순간, 즉 지금이 내가 도망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며 나의 삶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오직 하나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의 삶이 얼마나 많이 변한다 하더라도 분명한 한 가지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이라는 것이다.
p.49
지금 이 순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삶에 대한 책임도 회피하는 것이다.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책임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그러함'에 마음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지금과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삶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뜻이다.
p. 52-5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기억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
나의 생각과 감정과 지각과 경험으느 내가 아니다. 내 삶의 내용물은 내가 아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만물이 생성되는 공간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다.
p. 56
그것들보다 더 더욱 중요한 무언가는 바로 당신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찾는 것이다. 당신 스스로 만들어낸 일시적인 자아상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것을.
내면의 평화로움을 찾는 방법은 삶의 환경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당신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p. 60
사람들의 삶은 욕망과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다.
욕망은 무언가를 '더하여' 좀더 풍성해지려는 욕구이다. 반면 모든 두려움은 무언가를 '잃어' 자신이 작고 초라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렇게 더하고 잃어버리는 두 가지 활동은 생명이란 것이 본래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풍요한 생명은 이미 지금 이 순간 당신 안에 존재한다.
p. 66
당신은 말한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하는 일의 질은 어떠한가? 일터로 차를 운전하고 고객과 대화하고 컴퓨터 작업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며 나날의 삶을 살기 위한 수많은 일들을 할 때 당신은 얼마나 전념하여 일을 하는가? 당신의 일은 순응한 것인가 순응하지 못한 것인가? 그것이 바로 당신 삶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다.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다. 노력이란 긴장과 스트레스를 수반하며 미래에 일정 지점에 도달한 '필요성'을 뜻하며 특정의 결과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신은 마음속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 조금이라도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삶을 부정하는 일이므로 당연히 진정한 성공은 불가능하다.
마음속에 그런 심정이 있음을 감지했다면 즉시 그 마음을 버리고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가?
불교의 선사는 선의 정수가 무엇이냐의 질문에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라 말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 그것은 나의 온전한 마음을 다 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순응하는 것이다.
p. 71-72
'왜 하필 나야?' 라고 되묻지 않을 때 순응은 온다.
가장 고통스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속에 가장 깊은 선이 감추어져 있다. 모든 재난 속에는 사람의 씨앗이 들어 있다.
p. 76
인간은 단지 육체적 생존만을 자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고향집으로 가는 길, 생각이 만든 감옥을 빠져나오는 길을 찾는 데도 자연에 의존한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하느라 정신이 없다. 인간은 과거의 추억에 잠겨 있지 않으면 미래에의 기대에 가득 차 있다. 그런 와중에 문제로 점철된 삶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p. 83
자연을 볼 때, 우선 마음속에 아무런 생각도 없는 공간을 만들어라. 이렇게 다가갈 때 자연도 당신에게 다가와 인간 의식을 진화시키고, 나아가 지구 의식의 진화에도 참여할 수 있다.
꽃 한송이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는 모습, 삶에 완전히 순응한 모습을 보라.
p. 87
인간관계에 고요함을 가져오는 또 다른 방법으로 깊이 듣기가 있다. 누군가의 말에 진정 귀기울일 때 고요함의 차원이 내면에서 솟아올라 관계의 중심에 자리한다. 하지만 깊이 듣기의 기술을 제대로 습득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체로 사람들의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들은 당신이 한 말을 마음속으로 비판하거나 당신의 말이 끝난 다음 대꾸할 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당신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p.100
때로 인간관계는 지옥이다. 때로 인간관계는 커다란 정신 수행이다.
p. 103
잠시만 전념하면 충분하다. 그 사람을 바라보거나 그의 말을 들을 때 2,3초 정도 생생한 고요함이 자리하면 된다. 우리가 평소 행하고 동일화하는 역할 이상의 실체적인 것이 나타나려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역할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습관화된 의식의 일부이다. 온전한 전념을 줄 때 나타나는 것은 습관화되기 이전의 것이다. 나의 이름과 형상 밑에 있는 나의 실체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대본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그 차원이 나의 내면에서 솟아오를 때 남의 내면에서도 같은 차원을 이끌어낸다.
물론 궁극적으로 남이란 없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만나고 있을 뿐이다.
p. 105
하지만 좀더 깊이 살펴보면 삭아 들어가는 둥치와 썩어가는 나뭇잎은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썩어가는 과정에서도 생명으로 가득한 것을 알 수 있다. 미생물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자들이 스스로 재배치되고 있다. 그곳 어디에도 죽음은 없다. 다만 생명의 형태가 바뀌는 변태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p. 109
하지만 삶에서 끝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끝을 환영하는 법을 배운다면 처음에는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공허함이 어느 순간 깊고 평화로운 내면의 여유로움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 매일 이렇게 죽는 법을 배움으로써 삶에 나를 좀 더 열 수 있다.
p. 112-113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가? 고통을 끝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이든 마치 내 스스로 그것을 온전히 선택한 듯이 살아가라.
그렇게 나의 내면을 지금 이 순간에 조율하는 것이 고통을 끝내는 길이다.
p. 124
고통스러울 때, 불행할 때 지금 이 순간의 현실과 온전히 함께 머물라. 지금 이 순간의 드넓은 공간 안에서는 불행이나 고통이 살아남지 못한다.
주어진 상황을 마음속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나쁜 것'으로 명명하고 분류할 때 고통은 시작된다. 당신은 주어진 상황을 원망하고, 원망은 그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어 대립하는 '나'를 이끌어낸다.
p. 128
만성적인 육체의 통증은 가장 엄한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그 스승은 '저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가르친다.
p. 132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저자, 에크하르트 톨레.
올해 독서모임을 통해 만난 책 이후, 이 책은 선물처럼 나에게 온 두번째 책이다.
아직은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위안과 힘을 주는 글들!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마음의 힘! '고요함의 지혜!'
글귀 하나 하나가 정말 큰 울림을 준다.
고요함의 지혜로 삶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여전히 여러 욕망이 많지만... 이 또한 욕망이겠지만) 더 깊이 와닿는 순간의 나날들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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